계엄령으로 대한민국의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이었습니다. 우리 선대나 후대들도 실제 계엄령 상태를 모르시는거 같아 고민하다가 제가 직접 겪거나, 그 당시 아버님께 들은 내용을 몇가지 적어보았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있었던 일
그날은 토요일 이었습니다. 오전 수업후 한 살어린 동생과 어머니와 구전남도청 금남로1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2시가 넘었지만 점심을 못먹은 상태라 식당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군용트럭 몇 대가 와서 군인들을 내려놓았습니다. 모두 내리자 마자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저와 동생을 보더니 차마 어머니에게는 휘두르지 못하고, “아줌마! 빨리 여기서 피하시요. 장난이 아니요” 라고 하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자만 보면 일단 잡아다 트럭쪽으로 데려가더군요. 그 당시 구도청에서 전남대,조선대로 가는 쪽은 모두 통제를 했습니다. 우리 집은 구도청에서 직선거리로 1Km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선대 방향이라 길이 막혀 학동 방향으로 걸어가서 무등산 자락을 넘어 집으로 도착하니 5시가 넘었더군요. 이날이 아마도 공수부대가 처음 도착하여 학살을 시작한 날이 아닌가 합니다.
“살려주세요”
아마도 5월 20일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공수부대가 오고 2-3일 이 지난 때였습니다. 계엄령 당시에는 밤 9시와 10시를 번갈아 가며, 통행금지를 걸어서 사람들은 이미 시위대가 아니면 8시면 나가지 않는 상태 였습니다. 9시가 넘어서 갑자기 “살려주세요” 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마당에 돌을 집어 어렵게 구청에 사정해 설치한 집앞 가로등을 깨는것이었습니다. 백열 전구를 갈아 끼우는 방식인데, 놀래서 여쭤보니 아버님이 “시위대가 도망가는중인가보다. 목소리를 들으니 학생 같다, 어두워야 도망치기가 좋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같으면 몰려나가 도우면 되지 하겠지만 1-2시간마다 사람의 비명이 들리기 때문에 대문을 열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아” 하면 탄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택시와 버스기사님들
광주도심을 장악한 공수부대의 구타와 학살이 이어지고, 어디서 어떻게 사람이 죽거나, 끌려 갔다는 소문이 통장을 통해 은밀히 알려졌습니다. TV에서는 MBC,KBS만 나오던 시절이라 모두 계엄령에 장악된 방송은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상태였죠. 더 이상 안되겠다고 느낀 시위대중 택시와 트럭, 버스를 소유한 분들이 뭉쳐서 버스를 앞세우고 계엄군을 밀어내기 시작했다더군요.
나중에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낮에 아버지와 나가서 금남로를 봤는데, 매우 많은 택시와 버스가 부서져 길가에 서있었습니다. 소유주 분들이 재산을 희생하신거죠.
상무관
당시 구도청 앞, 지금 종각옆에는 상무관이라는 무술 도장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물론, 일반인도 무술을 수련하고, 배우는 큰 도장이었죠. 계엄군을 몰아내고 낮에 아버지 손을 잡고 상무관을 간적이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상무관 안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흰천으로 덮어서 쭉 이어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나무관들이 쭉 정렬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흰천을 들추고 가족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확인되어야 관에 넣어 인도하면 구루마(니어카)로 가져갈수 있는 구조인거 같았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가족을 찾고 오열하는 분들, 관을 실고 이동하는 사람들, 어디선가 관을 실고 오는 사람들, 어디선가 시체를 가져오는 사람들. 어린눈으로는 매우 바뻐 보였습니다. 아버지께 이 사람들 돈 많이 벌겠다고 말했는데, 아버지가 다 자기 스스로 하시는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에 왜 돈도 안주는데 일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양아치
1980년대에는 양아치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여기서 아치는 직업을 낮춰 부르는 말로 조선시대에는 "벼슬아치"라는 말이 있었죠. 양아치는 넝마주의 + 각설이 두 부류를 합쳐서 양아치라고 불렀습니다. 넝마주의란 커다란 대나무 가방을 등에 쥐고 고물이나 종이를 주우러 다니는 지금말로 하면 고물상입니다. 각설이야 말 안해도 아시겠죠. 거지들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부분 무연고에 호적이 없이 조선대와 무등산 사이에 움막을 짓고 모여 살았죠.
나중에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준다는 말을 듣고 이분들이 시민군으로 합류를 합니다. 밥을 주는구나 하고,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맞아죽고, 총맞아 죽으니, 이분들이 학생들 총을 뺏어서 선봉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 들은 말로 그분들이 “우리는 가족도 호적도 집도 없는 사람들이다. 대학생들 보다 우리가 죽는게 나라를 위해 나을거 같다” 라고 하면서 스스로 앞줄에 섰답니다. 그 와중에 고아로 자라다 중국집 배달하던 18세 19세 분들도 양아치 대열에 합류합니다.
이분들 사망이 통계에 포함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들은 말로는 그분들은 철저히 학생들 앞을 막아주었다고 합니다.
불타는 MBC
구도청에서 몇백미터에 광주 MBC가 있었습니다. KBS야 원래 독재정부 마이크 역할을 하던 곳이라 포기했지만, 민간방송 MBC가 시민군에 의해 불타는 일이 발생 했습니다. 7-8시 즈음 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갑자기 큰 불이 보입니다. 훨훨 잘 탑니다.이층에 올라가 보니, 건물 하나가 불타고 있더군요. MBC였습니다.
그 당시 언론을 통제 하였고 TV를 켜도 광주쪽은 몇시간만 계엄군이 주는 방송만 주구장창 나오던 시절이었죠. 광주를 북한 간첩이 점령했다는 뉴스를 시민군들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죠. 광주 외곽에 사는 광주시민을 세뇌 시키기 위해서였더군요. 내분을 일으킬려고 가짜 방송을 시킨것입니다.
헬기
낮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총소리가 따꽁따꽁 나는데, 갑자기 두다다다다 하는 총소리가 나더군요. 사직공원 방향이었습니다. 사람들 비명이 들리더군요. 몰래 솜이불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데, 하늘에서 불빛이 번쩍번쩍 하는거 같았습니다. 이동하는지 건물에 가려 보였다 안보였다 하더군요. 대략 20-30분 뒤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그게 헬기 사격이라는걸 알았습니다.
솜이불
아주 가끔 총알이 우리 동네로 날아옵니다. 집에 창이나 지붕이 깨지거나 한 사건들이 일어나니, 집집마다 아이들이 덮으면 숨을 못쉴 정도로 무겁고 두꺼운 솜이불을 창문 방문 마다 달기 시작합니다. 무거워서 고정이 안되니 아버지가 아깝지만 대못으로 박기 시작 하시더군요, 솜이불이 어머니 혼수였답니다. 솜이불이 없는 집은 서로서로 한장씩 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전대병원, 기독교병원
상무관에 십자가 깃발을 단 구루마가 왔다 갔다 했는데, 그게 병원에서 사망하거나 총을 맞거나 방망이로 다친 시민들을 옮기는 엠블런스 였던 겁니다.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상무관으로 옮기고.
문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답니다. 아버지 말로는. 그 당시에는 전남대 병원과 기독교병원에서 치료를 했답니다. 조선대 병원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들은 기억이 안납니다. 병원 주변 아주머니들이 나서서 간호사와 의사를 도왔답니다,
양동시장
광주로 들어오는 도로가 모조리 계엄군에 의해 막혔습니다. 식료품이 들어올 일도 나갈일도 없는 것이죠. 동네 주민들끼리 회의를 합니다. 일단 쌀들을 십시일반 모읍니다. 구멍가게 사장님도 쌀집 사장님도 모조리 개방합니다, 어떻게 우리 먹을 것은 해결되지만, 문제는 시민군들입니다.
양동시장 상인들이 나섭니다. 가게에 있는 모든 식료품을 시민군에게 보내고 주먹밥을 만드십니다. 시민군들은 쌀을 금남로 주변 동네로 보내 주먹밥을 만듭니다. 시민군이 지나가는 차에 동네 주민들이 올려줍니다. 나도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작은 주먹밥을 본 통장님이 시민군 굶겨죽일 일 있냐며 저는 퇴장 당합니다,
유언비어
계엄군이 시민으로 위장하여 각종 유언비어를 만들어 냅니다. 주로 간첩이 있다는 말이죠. 근데, 광주시민들은 알고도 나둡니다.(아버지 말입니다.) 저게 성공한다고 믿어야 시간을 더 벌수 있다고 생각하는거 같았습니다. 하루에 2-3시간 나오는 TV는 계속 광주시민은 폭도라고 나옵니다. 시민들이 비웃습니다, 더 뭉칩니다. 어린눈으로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제가 그나이가 되어서 계엄령을 맞이 하였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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